[정책/지원금] 에너지난 허덕이는 EU, 북극 석유·가스 개발 나서나

브뤼셀 상공을 뒤덮었던 숭고한 녹색 깃발이 마침내 지정학적 현실이라는 차가운 망치 앞에 힘없이 찢겨나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북극의 석유와 가스 시추 금지라는 ‘성역’을 스스로 허물 준비를 하는 모습은, 이상주의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짧은지를 보여주는 가장 잔인하고도 정직한 사례다.

불과 몇 년 전, 2021년만 해도 EU는 기후 변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북극의 신규 자원 개발을 국제적으로 금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고,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불타오르자 그들의 ‘친환경적 신념’은 당장의 에너지 안보라는 생존 문제 앞에서 너무나 쉽게 증발해버렸다. 이는 마치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서구 세계가 석유 한 방울에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경험을 한 뒤 부랴부랴 원자력 발전소와 전략 비축유에 매달렸던 역사의 데자뷰와 같다. 위기 앞에서 고상한 명분은 생존의 절박함에 자리를 내주는 법이다.

EU의 정책 전환 검토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그들의 녹색 전환 정책이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자인하는 꼴이다. 그들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기초 공사 없이 기후 대응이라는 화려한 상층부 건축에만 몰두했다. 이제 그 건물이 무너지려 하자, 황급히 땅을 파헤쳐 원유와 가스를 찾겠다는 것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의 교활한 줄타기

그들의 변명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FT가 입수한 문서에서 EU는 신규 시추 금지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진전이 없다고 실토했다. 이는 사실상 ‘어차피 미국, 러시아, 중국이 다 파헤치고 있는데 우리만 손해 볼 수는 없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결국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지구가 아니라, 국제 경쟁에서의 자신들의 입지였던 셈이다.

  • 압도적인 매장량: 미국지질조사소(USGS)는 북극에 전 세계 석유의 15%, 천연가스의 30%가 묻혀 있다고 추정한다. 이 막대한 ‘기회의 땅’을 눈앞에 두고 언제까지나 환경 논리만 외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안정적인 공급망: 호르무즈 해협이나 러시아의 가스관처럼 특정 국가의 변덕에 목숨을 맡기는 대신,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극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은 EU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 교묘한 꼼수: ‘북극 보호’라는 명분을 버리지 않기 위해 북극의 지리적 범위를 축소 해석하여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 등에서 개발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정치적 위선의 극치다.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개발하는 곳은 북극이 아니다”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는 ‘퍼포먼스 환경주의’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누구나 기후 변화를 외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그 신념의 진정성을 시험한다. EU의 이번 행보는 그들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앞으로의 세계는 파리기후협약의 아름다운 문구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추 장비의 굉음과 파이프라인의 경로, 그리고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국가들의 냉혹한 계산으로 재편될 것이다. EU의 북극을 향한 ‘위대한 후진’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 본 칼럼은 에디터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한 참고 자료일 뿐, 어떠한 경우에도 전문적인 투자 권유나 법적 책임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