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기업] 유가는 폭등했는데…’석유 공룡’ 순이익은 반토막 수준

유가가 폭등하면 정유사의 금고는 터져나간다는 순진한 믿음은 이제 쓰레기통에 던져야 한다. 엑손모빌의 순이익이 46%, 셰브런이 37% 급감했다는 소식은 시장의 무지를 꾸짖는 차가운 현실이다. 사람들은 미·이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석유 공룡들이 비명을 지른다고 착각하지만, 이것은 비명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자본의 노래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엑손모빌 생산량의 15%가 영향을 받았고, 공급망 혼란에 대응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연극의 1막일 뿐, 진짜 드라마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석유 메이저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호르무즈의 기뢰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요구, 즉 ‘자본 규율(capital discipline)’이라는 새로운 복음이다.

2014년의 유령이 지배하는 이사회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2014년, 셰일 혁명에 취해 미친 듯이 시추공을 뚫던 기업들은 유가 붕괴라는 철퇴를 맞고 줄도산했다. 당시 시장이 내린 교훈은 명확했다. 생산량 증가는 배신하지만, 주주환원은 배신하지 않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그들은 증산 대신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열을 올렸고, 이번에도 역사는 반복된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가 “기존에 설정한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CEO가 “불확실성 속에서 우선순위를 확고히 유지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말하는 ‘우선순위’란 무엇인가? 값싼 기름을 공급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 천만에.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오직 하나, 주주가치 극대화다. 지금의 생산 차질과 이익 감소는 그 목표를 위한 ‘관리된 고통’에 불과하다.

  • 제1원칙: 유가가 아무리 높아도 섣부른 자본 지출은 죄악이다.
  • 제2원칙: 잉여 현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현재의 주주를 위해 사용한다.
  • 제3원칙: 지정학적 위기는 증산을 압박하는 정부를 막아낼 최고의 방패다.

결국 답은 베네수엘라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중한’ 태도는 영원할까? 그 한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바로 베네수엘라다. 불과 몇 달 전 “투자 불가능”이라던 땅에 엔지니어와 변호사를 파견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 게임의 본질을 폭로한다. 그들은 ‘자본 규율’이라는 원칙을 신봉하지만,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어 유가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감지되자 가장 꺼리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절박함의 증거가 아니라, 냉혹한 계산의 결과다. 기존 유전의 감가상각이 끝나고, 주주들에게 돌려줄 현금이 쌓이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를 충분히 밀어 올린 지금이야말로 ‘실패한 국가’ 베네수엘라의 썩은 유전을 헐값에 인수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통제한 위기를 통해 새로운 이익의 판을 짜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석유 메이저들의 실적 악화를 동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2014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월스트리트의 총아로 거듭난 기업들이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자산 재분배 전략이다. 그들은 전쟁과 공급망 붕괴라는 안개를 방패 삼아 낡은 유전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새로운 먹잇감을 물색하며, 궁극적으로 더 높은 유가 환경에서 더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는 새로운 공식을 완성하고 있다. 주유소 가격표 앞에서 한숨 쉬는 시민들과 증산을 요구하는 백악관은 그저 이 거대한 체스판의 구경꾼일 뿐이다.

※ 본문의 해석과 전망은 작성자의 주관적 관점이 포함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공개된 지표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므로, 최종 판단은 독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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