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해운사를 향해 날린 경고장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사실상 워싱턴의 정책적 무능을 자백한 항복 문서에 가깝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이란에 돈을 지불하지 말라는 것은, 자국이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안전을 보장할 능력이 없으니, 이제부터 민간 기업이 알아서 총대를 메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당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개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에 직격당하거나,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금융 제재에 직격당하거나. 선박과 선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 잔인한 ‘게임’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미국 자신이다.
이란이 자국 연안에 우회 항로를 만들어 ‘통행료’를 받겠다는 발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이는 본질적으로 국가가 해적의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상황은 언제나 존재했다. 19세기 초 미국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전,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통행료, 즉 ‘공납’을 바치던 굴욕의 역사를 떠올려보라. 당시 유럽 열강과 신생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그 비용을 지불하며 무역을 이어갔다. 그것이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퇴행, 혹은 위선의 극치
하지만 2026년의 미국은 19세기의 해적보다 더 악랄한 딜레마를 강요한다. 바르바리 해적은 돈을 받으면 최소한 약속은 지켰다. 지금 워싱턴은 돈을 내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그 피해자인 해운사를 징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현금은 물론 디지털 자산, 상계거래, 심지어 자선기부 명목의 우회 지급까지 모두 잡아내겠다
는 OFAC의 집요함은 이란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의 동맥을 틀어쥐고 있는 민간 기업을 향하고 있다.
이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는 몇 가지 자명한 사실만으로도 증명된다.
- 첫째, 위험의 불균형을 무시한다. 당장 눈앞에서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는 위협과, 몇 달 뒤 워싱턴에서 날아올 제재 통지서의 무게는 현장에 있는 선장에게 결코 같을 수 없다.
- 둘째, 비용을 전가한다. 이로 인한 보험료 급등과 물류비 증가는 결국 최종 소비재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던 중앙은행의 노력을 재무부가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촌극이다.
- 셋째, 이미 자해 행위다. 미군 중부사령부가 이미 상선 45척을 회항시켰다는 사실은, 이 정책이 이란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교역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이란의 돈줄을 죄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달러 헤게모니와 미국 중심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만 키울 뿐이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결제 네트워크와 탈달러 시스템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워싱턴은 스스로 판 무덤에 빠져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진정한 위기는 이란의 봉쇄가 아니라, 동맹국과 민간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미국의 외로운 독주다.